주일 성서정과 묵상 (2021년 11월 21일/성령강림 후 마지막/왕이신 그리스도/추수감사 주일)

2021년 11월 21일 주일

 

성서정과 복음서: 요한복음 18장 33-37절

 

신약학자인 김학철 교수는 그의 책 교양으로 읽는 마태복음서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특별한 사건은 낭비를 통해 기억되어야 한다.” 커플이 사귄 지 100일 때 되는 날이다 1년이 되는 기념일을 축하하고 기억하는 방법, 미국 사회가 911을, 또는 한국 사회가 세월호 사건을 기억하는 방법은 어찌 보면 낭비를 통한 기억이라고 할 수 있겠죠.

특별한 사건은 낭비를 통해 기억된다.

교회에도 이렇게 낭비를 통해 기억해야 하는 날 또는 사건이 많습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과 다음주부터 맞이하게 될 대림절이 바로 그런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추수감사주일은 보통 교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인 성령강림 후 마지막  주일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_과 겹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감사의 의미도 있고, 성령 안에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성찰할 수 있는 날이죠.

우리는 무엇을 낭비하며 이 특별한 날을 기념하고 기억할 수 있을까요? 저는 오늘 성서정과인 요한복음 18장 말씀을 읽으며 ‘상상(력)’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많은 사람, 특히 성인에게 ‘상상’은 일종의 낭비로 받아들여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그 상상이 아닐까요.

오늘 성서정과는 빌라도와 예수님이 대화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에게 묻습니다. “당신이 유대인의 왕입니까?” 예수님은 이런 뉘앙스로 대답하죠. “당신 말대로 왕이 맞습니다. 하지만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대답이 조금 모호하긴 하지만, 이 대답을 들은 빌라도는 이렇게 물어야 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당신이 속한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내가 아는 나라는 로마, 내가 아는 왕은 로마 황제밖에 없는데, 그것이 아닌 다른 나라 다른 왕이 있다는 말이오?” 하지만 빌라도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상력의 한계를 넘고자 하지 않죠. “됐고, 간단히 말씀하시오. 그래서 왕입니까? 아닙니까?”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대화를 통해 예수님은 빌라도의 작은 상상의 한계를 깨뜨리려 한다. “당신은 지금 잘못된 기준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꿈꾸는 법을 배우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세계 너머에 있는 것을 상상하지 못합니다. 무엇이 가능할지 자신을 오픈해 보세요.” 이런 말이 저에게는 상상되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 하고 새해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이 시간, 어쩌면 우리 중 대다수는 게으르며 조작적으로 나의 미래를 예측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달라질 것도 나아질 것도 없다고 기대도 상상도 하지 않을 수 있죠.

빌라도처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준과 관심, 질문에 매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고 있는 것 말고 또 다른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에 자신을 열 수 있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중요한 사건은 낭비를 통해 기억된다. 이 시기는 우리가 신앙적으로 낭비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변화에 대한 상상에 우리 에너지를 낭비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