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성서정과 묵상 (2021년 12월 5일/대림절 두 번째 주일)

2021년 12월 5일 주일

성서정과 복음서: 누가복음 3장 1-6절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성공회 대주교 데스몬드 투투가 쓴 ‘하나님의 아이들 이야기 성경’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성서 이야기 모음집입니다. 아이들에게 읽어주려고 이 책을 주문했는데, 아이들 보다 저와 제 아내가 오히려 더 큰 감명을 받은 책입니다. 이 책을 읽고 제가 처음 한 말이 있습니다. “말씀이 이기적이지 않아!” 네, 정말 그렇게 느꼈습니다. “어떻게 모든 내용이 이렇게 이기적이지 않을 수가 있지?!” 재미있는 감상이죠? 그런데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아내도 저와 동일한 감상을 이야기했습니다.

‘말씀이 이기적이지 않다.’ 재미있으며 안타까운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내가 읽었던 말씀은 이기적이었다는 말이 되니까요.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성서의 이야기를 읽고 해석하는 방식을 떠올려보면 많은 경우 ‘나’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의 축복, 나의 구원, 내 삶의 안정과 안녕 등에 우리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죠. 그리고 오늘 성서정과의 주제인 ‘회개’도 깊게 들여다보면, 나의 이익을 위해 행했던 신앙의 의식이지 않았나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이야기하지만 그 뒤에 감추어진 (또는 대놓고 드러낸) ‘나의 뜻’과 ‘내가 원하는 것’이 우리 신앙을 좌지우지할 때가 많았죠. 투투 주교는 그의 책에서 이와 정 반대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나뿐 아니라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모든 사람은 그 생명과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약자의 관점에서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오늘의 성서정과인 누가복음 3장은 세례자 요한이 전한 회개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말하며 죄의 용서를 위해 회개하라고 소리칩니다.

회개는 무엇인가요? 말씀을 전하는 목사로서 동시에 말씀을 듣는 교인으로서, 저는 회개하라는 메시지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회개가 신앙인의 삶에 있어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회개하라!”라는 메시지를 듣고 진심으로 제 삶을 성찰한 경험이 많지 않았습니다. 어느 때는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는데 회개하라니 난감하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습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억지로 찾으려 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진심으로 회개를 한 적도 있고, 그런 회개의 경험은 제 삶이 바뀌는 중요한 계기이기도 했죠. 하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듣는 회개의 메시지와 그때 느끼는 감정을 생각해 보면, 습관적으로 하는 회개, 억지로 하는 회개와 같이 진심이 전혀 담겨 있지 않은 회개에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회개가 무엇인가요? 보통 내가 저질렀던 구체적인 잘못을 고치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화를 내거나 미워하는 것 탐내는 것, 또는 실제적인 불법 행위들, 예를 들면 훔치거나 상해를 입히거나 하는 등의 행위를, 반성하고 고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죠. 하지만 회개는 그보다 크고 넓은 의미를 갖습니다.

신약성서에서 회개라는 말로 번역된 그리스어인 ‘메타노이아’ 구약성서의 ‘슈브’라는 단어의 어원과 의미를 탐구하면 회개는 단순히 구체적인 죄를 찾아서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원래 있어야 할 곳, 원래 가야 할 곳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말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회개해야 할 이유인 ‘죄’는 마음과 정신이 원래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회개란 윤리적인 잘못들, 또는 법적인 잘못을 용서받기 위해 뉘우치는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회개는 우리 마음과 삶이 원래 있어야 할 곳을 찾아 그 방향을 전환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어떤 목표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도자가 목표가 바뀌었다. 방향을 바꾸어 저쪽으로 가라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길을 바꾸어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가겠죠. 이렇게 잘못된 목표를 향해 가던 삶의 방향을 돌이키는 것이 회개이고요, 또는 어디로 가는지 몰랐던 자신을 인식하고 가야 할 목표를 찾아가는 것이 보다 넓은 회개의 의미입니다.

세례 요한이 전했던 메시지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요한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고 선포합니다. 이 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상의 방식이 우리에게 가까이 왔다. 그 방식을 너희가 알게 되었으니, 우리 삶의 방식과 목표를 돌이키고 수정해야 한다는 의미겠죠. 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질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방식을 저는 투투 대주교의 성서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투투 주교는 누가복음 3장 요한의 메시지를 이렇게 들려줍니다.

요한은 세례를 받으러 오는 이들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몸뿐 아니라 마음도 깨끗하기를 바라십니다. 매정함을 친절함으로, 이기심을 나눔으로 바꾸십시오.” “하지만 어떻게요?” 사람들이 물었어요. “옷이 두 벌 있으면 한 벌을 나눠 주고, 빵이 한 덩이 있으면 반을 나눠 주시오.” 회개를 하라고 말한 요한에게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사람들이 물었을 때 요한은 이렇게 대답한 것입니다. 너희만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 대해 생각해라.

오늘 본문에 죄 사함의 회개의 세례라고 되어 있는데, 사함이라는 단어는 아페신이라는 그리스어입니다. 그런데 ‘사함/용서’는 원래 ‘중독되어 있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이 나만을 위해 무언가를 더 가지려 하는 것, 어쩌면 이 시대 모두의 중독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죄의 용서입니다. 나 자신에게 중독되어 있는 상태로부터 벗어나, 세상 모든 사람들의 동일한 구원과 행복이라는 하나님의 목표와 관심으로 우리의 관심을 전환하는 것이 진정한 회개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