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성서정과 묵상 (2021년 12월 12일/대림절 세 번째 주일)
2021년 12월 12일 주일
성서정과 서신서: 빌립보서 4장 4-7절
기쁨은 묵상과 실천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며 우리는 성서를 읽습니다. 어떤 성서의 말씀은 있는 그대로 믿어질 때가 있죠. 하지만 모든 말씀이 그렇진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성서의 말씀이 과장된 말로 읽힐 때도 있고, 종교적인 선전 문구로 보일 때도 있습니다. 또는 말씀의 내용이 특정한 일을 경험한 개인이나 집단의 흥에 겨운 감정 표현으로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오늘 성서정과의 말씀은 어떤가요?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다시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이 말씀은 있는 그대로 믿어 지나요? 아니면 너무 이상적이고 좋은 말씀이라 과장된 신앙의 표현처럼 들리나요?
“항상 기뻐하십시오”라는 권면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적어도 진정성 없는 값싼 “아멘”이나 “나는 항상 기쁘다”라는 최면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기쁨을 일종의 감정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 이유가 사람이든, 사건이든, 또는 사물이든, 그것을 만날 때 자연스럽게 피어오르는 기분 좋고 밝은 감정이죠. 하지만 바울이 말하는 기쁨은 일회적인 감정이 아니고 신학적이고 신앙적인 실천입니다. 신학적이고 신앙적인 실천이라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복음에 대해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복음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정답이라고 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알려주고 그대로 살아야 한다는 강요가 아니죠. 복음은 하나님이 나를 바라보는 방식, 하나님이 나에 대해 느끼는 방식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시선과 마음을 느낄 때 우리 안에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생명, 그리고 그 생명을 살아내도록 우리를 격려하고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은 요구가 아니라 약속이라고 말합니다.
기쁨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기쁨은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해야 한다는 강요, 또는 성찰이 결여된 무조건 적인 요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쁨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하나님이 내 삶을 어떻게 느끼는지 묵상하고, 그 상황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만들며 감사로 그것을 살아내는 실천적 과정 자체를 말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쁨은 감정일 뿐 아니라 신학적이고 신앙적인 실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방금 이야기한 내용이 개인적인 측면의 기쁨을 이야기한 것이라면, 바울은 이에 덧붙여 관계적인 측면의 기쁨을 이룰 수 있는 신앙적인 실천도 이야기합니다.
바울은 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십시오.”
우리말 ‘관용’으로 번역된 ‘에피에이케스’라는 헬라어 단어는 영어로는 ‘gentleness’라고 번역됩니다. 영어 단어에서 볼 수 있듯, 부드럽고 나이스하고 친절한 태도를 말합니다. 그런데 에피에이케스라는 헬라어 단어는 단순히 부드럽고 친절한 태도 이상의 것을 말합니다. 이 단어는 “너그럽다,” “용납한다” 그리고 “나의 권리를 지나치게 주장하지 않으며” “타인에 대해서 너무 엄격하지 않은 태도”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누구에게요? “모든 사람에게”입니다.
관용이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것을 통해 느꼈던 격려와 기쁨을 타인에게 똑같이 돌려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요? 하나님은 자신의 요구나 권리만을 주장하지 않으시고, 너무 엄격하지 않게 너그럽게 보시고 용납해 주시지 않나요? 이것은 주님의 관용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십시오”라고 우리를 권면합니다.
신앙적 실천을 통해 하나님의 관용을 경험하는 기쁨이, 그리고 나의 관용을 통해 타인이 관용을 경험하는 기쁨이 세상에 가득해지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