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성서정과 묵상 (2022년 3월 20일/사순절 세 번째 주일)
2021년 3월 20일 주일
성서정과 복음서: 누가복음 13장 1-9절
작년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된 ‘지옥’이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드라마 속 세상에는 독특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갑자기 어떤 사람에게 ‘천사’가 나타나 그 사람이 몇 날 몇 시에 죽을 것이라는 ‘고지’를 합니다. 그리고 그 시각이 되면 지옥 사자 셋이 나타나 고지를 받은 사람을 린치 한 후 불에 태우고 사라집니다. 이 일은 ‘시연’이라 불립니다.
드라마는 누가, 어떤 이유로 이 일을 일으키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누구도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이 무작위로 일어나는 거죠. 감독은 애초부터 이 현상에 대한 설명을 기획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감독은 드라마 속 상황의 설명이 아니라 이러한 사건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그리고 싶어합니다.
이 사건을 마주하는 두 가지 태도 또는 그룹이 있습니다. 첫 번째 그룹은 이 사건을 해석합니다. 세상에는 신이 존재하는데, 그 신은 모든 사람이 한 점의 죄악도 없이 살기를 원한다. 그리고 ‘고지’와 ‘시연’은 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한 신의 심판이다. 이 해석은 심각한 사회문제를 초래합니다. 누군가 고지를 받게 되면 그를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죄인으로 확정하고 욕합니다. 더 나아가 고지를 받은 사람의 가족들까지 죄인의 가족으로 낙인찍혀 사회에서 매장당하게 됩니다.
두 번째 그룹은 고지와 시연을 자연재해와 우연한 사고와 같이 받아들입니다. 고지를 받고 안 받고는 죄와 관계가 없다. 죄의 유무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그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죠. 세상 누구라도 고지와 시연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고지와 시연의 이유를 해석하려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건 자연재해와 같이 우연적으로 그리고 무작위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단지 고지를 받은 사람과 그 가족이 사회적 린치를 당하지 않도록 돕기로 결정하고 그렇게 행동합니다.
이 드라마를 보며 씁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 첫 번째 그룹과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이에게 닥친 어려움, 불행, 또는 뜻하지 않은 사건을 바라보며 그 사건을 해석하려 합니다. 그런데 긍정적이고 건강한 해석이 있을까요?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에게 닥친 불행을 부정적으로 해석합니다. “뭔가 이유가 있으니 저런 일을 겪을 거야.”
누가복음 13장 초반에도 불의의 사건과 사고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제자들 또는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마 그들 마음속에는 “왜, 어떤 이유로 이들이 목숨을 잃었을까요? 그들에게 죄가 있어 하나님이 그런 방법으로 심판한 것이 아닐까요?”라는 물음이 있진 않았을까요?
예수는 이 사건의 포커스를 “죄를 지었는가? 누가 더 큰 죄인인가?”라는 물음에서 옮겨 이 사건을 보고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말씀합니다.
“그 사람들이 더 많은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다.”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해석이 건강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때의 해석은 사건을 가십으로 만들거나, 나와 남을 비교하며 스스로 우월하다는 자기만족일 뿐인 경우가 많죠. 타인의 불행과 고난, 그리고 고통스러운 사건 앞에서 우리는 해석을 할 것이 아니라, 도울 수 있는 일, 실제적 사랑의 실천 방법을 고민해 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