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성서정과 묵상 (2023년 12월 24일/대림절 네 번째, 성탄 주일)
성서정과 복음서: 누가복음 1장 26-38절
어떤 사람 둘이 만나 서로 연인이 되는 과정에서 만남의 초반 서로의 호감을 키워가는 과정을 썸 탄다고 하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썸 탈 때 상대방에게 호감을 끌기 위해 꼭 하는 일이 있습니다. 우연을 가장해서 자주 만날 기회를 만드는 거죠. 예상치 못했는데 우연히 자주 만나면 더욱 호감을 갖게 되고. 둘 사이의 만남이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고 생각하게 하며 만남에 의미를 부여하게 만드는 전술이죠.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만남을 운명 또는 기적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기적과 같은 만남, 너를 만난 건 운명이었어 이런 말들이 노래 가사에도 자주 등장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둘 사이의 만남은 우연도 필연도 아닌 계획의 산물입니다. 물론 세상에는 어떤 인과 관계나 계획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일, 말 그대로 기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기적은, 특히 그것이 관계에 관한 것이라면, 그 기적의 순간이 일어나기 전 보이지 않는 노력과 계획과 시행착오, 또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 등이 모여 이루어집니다.
대림절 네 번째 주이자 성탄 전야인 오늘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 생각해 볼까요? 예수님의 탄생도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누군가에겐 기적, 누군가에겐 하나님의 계획, 또 다른 누군가에겐 우연히, 무작위로 일어난 역사 속 사건 중 하나일 것입니다.
오늘 성서정과 본문인 누가복음은 이런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담아 예수 탄생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누가는 예수의 탄생 그리고 그의 삶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이루어진 일이란 사실을 강조합니다. 신앙이 있든 없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알고 있는 오늘날과 달리 누가복음이 기록될 당시, 예수님에 대해 아는 사람, 예수님이 구원의 주님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겠죠.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태어난 사건부터 그의 삶과 사역을 우연히 또는 자연스럽게 발생한 작은 종교운동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는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등장하는 세례자 요한의 탄생 이야기부터 마리아의 이야기를 차분히 설명합니다. 누가는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로 오신 사건은 오래전부터 계획된 일이며, 그 계획이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건들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여 그 계획이 이루어졌는지 꼼꼼하게 전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동시에 누가는 이러한 꼼꼼한 조율의 과정에는 기적이라고 불리는 일들이 있었다는 것도 함께 말합니다. 나이 많은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삶을 어렵게 만들었던 자녀가 없다는 결핍을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신 일, 처녀인 마리아가 아기를 갖게 되는 일, 당시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절대적 약자인 마리아라는 소녀가 자신의 의지와 목소리를 가지고 예수님 탄생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점. 하나님의 역사는 그분의 세밀한 계획과 그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크고 작은 기적들, 그리고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죠.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은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여전히 크고 작은 기적이 일어나고 있고, 기적을 꿈꾸는 사람도 있습니다. 질병에서 가난에서 전쟁에서, 부조리에서, 차별에서, 상실에서, 결핍에서, 낮은 자존감에서, 힘든 일에서… 이런 현실에서 벗어나거나 아니면 조금은 따뜻한 위로를 얻기 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적은 우연히 일어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은 많은 사람들과 사건들이 어떻게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여, 그것을 통해 계획이 이루어졌는지 꼼꼼하게 전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하겠죠. 오늘 누가복음 본문은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계획이 실현되게 만드는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기적을 일으키는 주체가 되어야 하지 않겠냐는 초대가 아닐까요?
하나님도 분명한 의도와 계획과 의지를 가지고 기적을 행하십니다. 우리도 함께 준비하고 노력하고 실천하며 기적이 필요한 이들이 기적을 맛볼 수 있도록 하는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