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성서정과 묵상 (2023년 12월 3일/대림절 첫 번째 주일)

 

성서정과 복음서: 마가복음 13장 24-37절

 

어린 아이들과 부모 사이에서 아이들이 갑이 되고 부모가 을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관계가 역전되어 부모가 갑이 되는 기간이 있습니다. 아직까지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를 믿는 어린아이들이 있는 집, 그 가정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기간입니다. 저희 집 아이들도 아직 산타 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이브에 선물을 준다고 믿습니다. 이 기간 동안 아이들이 밥을 잘 안 먹거나 이유 없이 짜증 내거나 장난이 심할 때, “그러면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안 주실지도 모르는데…” 하고 말하곤 하죠. 교육상 좋지 않다는 걸 알지만 부모에게는 피할 수 없는 유혹입니다.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을이 되고 그 약점을 이용할 수 있는 부모는 ‘갑’의 위치에 서게 됩니다.

생각해 보니 기다리는 사람은 대부분 경우 을의 위치에 있습니다. 연인 사이에서도 더 애절하게 기다리는 사람이 보통 ‘을’입니다. 회사에 입사지원을 하거나 학교에 지원했을 때도 기다리는 지원자가 을이죠.

그럼 기다림의 절기라고 할 수 있는 대림절에 대해 생각해 볼까요?

대림절, 모두 알다시피 기다림의 절기입니다. 그런데 기다림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 기다리는 내가, 기다리는 인간이 대림절의 주체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성찰해 봅니다. “어떻게 하면 더 잘 기다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잘 준비할 수 있을까?” 마치 내가 무언가 더 의미 있는 것을, 더 많은 것을 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대림절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 주님이죠. 대림은 기다림의 절기 이전에 주께서 우리 가운데로 오시는 ‘오심’의 절기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고 소망을 품지만 모든 경이와 기적은 ‘오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기도할 때도 언제나 무엇인가를 얻으려 애쓰곤 합니다. 하지만 대림절, 우리는 무엇인가 얻으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겸허하고 맑게 비워진 마음으로 기대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내가 어떻게 잘 기다릴 수 있을까?”라는 질문 이전에 “오시는 그분은 누구인지 어떤 분인지”에 집중하는 것은 어떨까요?

조용하고 겸허하게 오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께서 스스로 드러내시는 모습에 집중하고 의존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경이가 우리 작은 영혼으로 들어올 것입니다.

기다리는 우리 인간이 대림의 주체가 되지 말아야 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기다리는 이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다 보면, 스스로 원하는 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그 신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필요와 욕망이 투여된 신의 모습, 한 마디로 망상에 사로잡히는 신앙인들을 수없이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대림이 그런 절기가 되어서는 안되겠지요.

성서가 들려주는 예수는 언제나 우리가 기대하지 않은 방식 우리가 욕망하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오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성서정과 복음서 본문인 마가복음 13장 24-37절도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작은 묵시록이라는 부제가 붙은 오늘 텍스트는 예수가 오시는 때의 광경을 그리고 있는데요, 우리가 기대하는 성탄의 배경과는 사뭇 다릅니다. 처절한 세상 끝 날의 모습을 그립니다. 종말의 모습을 한 그날 예수가 오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본문을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요? 세상에는 인생의 마지막 날과 같은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된 일상을 사는 세상의 ‘을’ 말입니다. 세상의 끝 날 주님이 오신다는 것은 바로 오늘 각자의 종말을 살고 있는 세상의 모든 ‘을’ 가운데로 주님이 오신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주님은 깨어지고 조각난 것들 가운데로 오셔서 상처를 회복하고 아픔을 위로하고 구원하십니다.  왜냐면 그것이 주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속성이 그러하기 때문에 스스로 세상의 모든 ‘을’에게 오셔서 그분의 소망, 정의, 기쁨과 사랑으로 그들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이제 대림절을 시작합니다. 기뻐하고 슬퍼하는 사이에,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는 가운데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임재에 스며드는 대림절 기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